벽의 실체는 밑바닥에서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서서히 무너져 급기야는 폐허로 변해가는...”
“벽-일상의 그림자”
가정의 실내 전경과 집안에 있는 어린아이가 전면을 바라보며 빛 바랜 포스터처럼 폐허만이 남아있는 장면들을 실루엣처럼 배경에 깔고 있는 모습을 통해 성태훈은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가. 작품 속의 장면들은 이전 개인전 장면들의 연장선상에서 보여지지만, 하나 하나 관찰해보면 이번 전시의 작품들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어린아이의 얼굴은 이전의 전시와는 달리 전면을 바라보거나, 또는 욕조와 세면기가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현실과는 낯선 듯이 보이던 사건들은 이중의 화면에서 벽에 내재한 배경화면으로 바뀌어 있다.
좌측이나 우측의 배경화면으로 등장하던 폐허의 장면들은 화면의 전면인 바닥에 깔리며, 그 위에 딸(윤서)을 모델로 한 어린아이와 자전거가 놓여있다. 벽은 연두색 바탕 위에 묵(墨)을 사용하고 있으며, 싱크대의 색깔과 화장실의 타일들은 녹색이나 연한 연두색 계통을 띠고 있다. 무엇보다도 폐허의 장면들은 앞선 전시에서 보여지는 전쟁후의 폐허 장면만을 암시하데 그치지 않고 있음을 알수 있다.
이러한 폐허의 장면들은 무엇을 암시하고 있는 것인가. 작품 속의 등장인물의 표정과 배경화면에서 우리는 그 의미를 헤아려볼 수 있다. 싱크대를 내려다보는 어린아이의 모습에서 안락한 가정의 일상을 느낄 수 있으며, 앞을 바라보는 어린아이의 눈은 다가올 시간, 즉 우리에게 일어날 미래를 감지하게 한다.
그러한 모습들은 약간의 얼룩진 화장실의 바닥의 타일이나, 욕조나 그리고 소변기를 통해 다시 환기시키고 있다. 그리고 안온한 느낌의 녹색의 벽은 실내와 밖을 가르지만, 먹빛의 벽에서 보여주듯이 벽의 실체는 밑바닥에서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서서히 무너져 급기야는 폐허로 변해 가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이러한 화면의 알레고리의 이해를 통해 우리는 일상에서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재난과 그로인한 불안을 읽을 수 있다. 재난의 요인은 무엇인가. 이중적인 메타포를 암시하는 화면 속의 벽은 작품의 의미를 풀 수 있는 하나의 열쇠고리가 된다. 벽의 화면은 일상의 평온함을 의미하지만, 반대로 개인들 간의, 사회 간의, 국가 간의 단절을 의미하며, 앞선 전시에서 이야기했듯이 급기야는 인간성을 말살시키는 전쟁을 야기한다. 그리고 그러한 화두에 대한 해답을 천진스런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제시하고 있다. 벽은 우리가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지닐 때만이 일상이 안온한 울타리로 변할 수 있음을...... 그러나 우리는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나아갈 수 없는 것인가. 작가는 이러한 물음을 던지며 일상의 시선을 통해 사의(寫意)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