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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민(가나아트센터 전시기획자)



“꿈꾸는 닭, 닭이되 더 이상 닭이 아닌 닭”


1. 닭이 어두운 밤하늘을 난다. 멀리서 동이 터올 것 만 같은, 그래서 지금은 더욱 깊고 어두운 검은 하늘을 닭이 난다. 난다기 보다 날갯짓 한 번에 한 움큼의 공간을 확보하며 공중을 점프해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힘겹게 공중을 뜀박질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혹은 아무도 보는 이 없는 도시의 밤하늘에 떠있는 애드벌룬이나 삐라가 든 풍선처럼 커다란 하늘을 아주 작게 천천히 부유한다.
하여튼, 닭이 검은 하늘을 난다. 병아리도 따라날며, 간혹 봉황처럼 변해가기도 한다. 비상을 꿈꾸고 나는 높이만큼의 변모도 꿈꾼다. 혹은 동트기 전에 꾸는 꿈처럼 보인다.
성태훈 그림에서 밤을 나는 닭은 흡사 장대높이뛰기 선수 같다. 잃어버린 날개의 기억에 의존하여 도약 대신 비상을 꿈꾸고 날개를 회복하려는 슬프고 비장한 닭이 우화적으로 공중에 던져진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 ‘닭’은 우리들의 거울이며, 금세 우리는 닭에 감정을 이입한다. 회를 치는 새벽닭은 먼저 온 초인이기도 하지만 퇴화 이전의 날개를 그리워하는 태초의 응시이기도 하다. 그리고 현실은 단지 닭이다.

일종의 희비극이다. 우(寓)화가 슬픈 것은 동물의 이야기에 빗대지만 우리 모두 그것이 우리의 이야기 임을 안다.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 중에서도 바보 같은(愚) 그리고 일상적인 일들을 다룬다. 거울같이 일상적이고 거울같이 바보 같고 그래서 거울에 비친 나처럼 우울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가지고 ‘날아보고, 날아보고, 날아지고, 날게 되는 꿈을 꾼다’ 설령 날지 못하더라도 도약하고 날아가는 ‘꿈’은 꾼다. 그래서 ‘인생은 아름답’다 그리고 닭도 아름답고 숭고하다. 곧 밝아올 밤의 끄트머리에서 외로이 나는 닭은 비장하게 숭고하다. 일상이 가장 숭고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는데 시간이 다소 걸리지만, 일상의 숭고는 예술의 최종적인 지향점이기도 하다.

2 옻나무에 상처를 내어 수액을 도료로 사용하는 것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쌀농사 문화권 고유의 방식이며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오랜 도료이다. 인류가 만들어낸 자연 도로로는 최고의 산물이기도 하고 독성 또한 만만치 않아서 생활에 쓰이기까지 무척 애를 먹기도 했을 것이다. 안료에 따라서 다양한 색채 표현이 가능하여 흙반죽을 굽는 것과 더불어 가장 오래된 공예재료이기도 하다. 환경과 시간에 대한 안정성은 인류가 만들어낸 어떤 재료보다도 지속적이며 안정적이다.
다시 말하면, 그 안정성을 바탕으로 색체표현이나 특유의 광택으로 회화적인 가능성도 무한히 확장할 수 있는 재료이다. 인류학적 전통에 기반을 둔 역사적으로 검증된 회화재료라 할 수 있다. 표현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전통적인 서양의 재료에 미치지 못하지만 그것은 옻을 기반으로 한 여러 가지 발색과 채색의 방법들에 대한 실험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래서 옻이라는 재료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높고 당연히 새로운 방식이 된다.

성태훈이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옻칠회화는 인류가 만든 가장 안정적인 재료를 그림으로 어떻게 바꾸어내는가라는 측면에서 매우 흥미진진하다. 이직까지 옻칠이나 나전을 이용한 회화의 방식이 회화적 태도라기 보다는 아직까지 우리가 만들어낸 기법들을 평면의 형태로 바꾸어낸 차원의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다시 말하면, 회화라기보다는 기존의 공예적 기법을 쓸모의 가치가 아닌 감상의 가치로 바꾸는 것 정도의 감상공예의 틀안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성태훈은 옻이라는 재료를 회화 즉 그리는 행위를 가능케 하는 안료로서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그릇의 형태를 펼쳐 평면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메우고 지지대를 보호하고 미적 완성도를 높이는 재료를 그리는 수단을 삼고 그것을 이용하여 완전히 다른 회화적 세계를 만들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색을 섞고 그것을 갈아내고 새로운 표면상태를 만들어 가면서 새벽이 오기전의 깊지만 곧 끝나버릴 어둠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성태훈의 근작인 옻칠회화의 요체이다. 표면을 장식하는 도료가 아니라 표면에 완고하지만 무한한 깊이를 만들 수 있는 재료로 옻칠에 주목한 것은 매우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형식이 내용을 전적으로 담보하진 못하지만 회화적 형식은 담기는 내용의 전체적인 면모를 규정한다. 어떤 일의 방식은 그 방식에 가장 잘 어울리는 내용과 만나 형식과 내용이 ‘비교적’ 일치하는 새로운 양식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미술의 역사가 증명한다. 작가의 새로운 시도가 내용과 형식을 두루 만족시키는 새로운 양식의 회화에 이르길 기대한다.

3. 새로운 재료는 방식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요구한다. 옻이라는 재료가 가진 공간구성의 방식은 공간을 조성하고, 조성한 공간을 연차적으로 장식하는 것이었고, 작가가 지속한 방식은 먹의 운용을 공간 안에 사물을 위치케 하는 방식이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옻을 회화적 재료로 선택한 순간, 이들은 화해를 모색하거나 새로운 방식을 만들어야 한다. 이번 작업을 통해서 작가는 새로운 재료에 대한 새로운 방법실험에 초점을 맞춘 듯하다. 기존의 회화 방식에서 벗어나 재료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방식을 찾아내는 것 그리고 그것을 적합한 표현에 이르게 하는 형식실험이 이번 작업에서 병행된다. 고된 일이지만, 새로운 일이고 새로운-특유의 방식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Dreaming Rooster
- Beyond Physical Limitations -


1. A rooster flies in the dark sky at night. It seems to be just before dawn when the black sky is at its darkest and deepest ever. Maybe it is not actually flying. Rather it looks closer to struggling to jump up in the air with its wings aflutter in order to impress itself in the darkness of the sky or it drifts up in the vast sky like an ad balloon embellished with advertising messages as it floats in the air unnoticed in the city. The rooster flies in the midst of the black sky with chicks following it as it sometimes transforms into a phoenix. It dreams of ascending the skies wishing for a great transformation as it soars high. It seems like a dream right before the daybreak.
A rooster flying at night in Seong Tae-hoon’s art piece seems like a pole jumper yearning for the memory of its lost wings as it dreams of soaring. The sorrowful and solemn rooster is seemingly flung in the air as an allegory. The ‘rooster’ works as a mirror reflecting people, and therefore they naturally empathize with the rooster. The rooster crowing is like a superman foreseeing events in the future and at the same time it serves as a primal gaze missing its atrophied wings. In reality it is but a mere rooster.

It is a type of tragic comedy. The sadness of the allegory comes from the fact that people all know that it is their own story despite its reference and comparison to animals. It deals with trivial things and everyday happenings commonly found among the different kinds of stories. It is a mundane daily reflection similar to a mirror. It is as gloomy as their reflections in the mirror. Nevertheless, they still dream of trying to fly, struggling to fly, and finally being able to fly. Even though they may not fly, they never give up the dream of flying. Therefore, ‘life is beautiful’and as such the rooster can be beautiful and sublime. The rooster flying alone at the end of the dawn feels solemnly sublime. It takes time, more or less, until finally recognizingthat everyday is the most sublime and beautiful, and the grandeur of every day is an ultimate goal of art.

2 The use of sap from the lacquer trees as a paint is indigenous to the entire cultural zone of the rice producing sector including Korea. It is one of the oldest paints that humankind has ever created. It is one of the best natural manmade paint. Its appalling toxic quality must have caused a great deal of trouble until such time when means for it to be utilized and finally applied for practical as well as creative purposes were discovered. It is possible to create a variety of colors depending on the pigments used. It also serves as one of the oldest craft materials along with baking clay. It can last longer than any other materials created by man. In terms of its durability it can withstand the rigors of the environment and the passage of time. In other words, its durability allows it to have unbounded possibilities through its graphic and vivid potentials such as colors and unique sheen. It can be said that it is a historically proven pictorial material based on its anthropological heritage. It falls short if compared with Western traditional material in terms of diversity though. Probably it is due to the insufficient experimentation in the creation of the different colors when applying pigments using the lacquer. Therefore, its potential for development and innovative uses is infinite and is just waiting to be discovered.

Seong’s lacquer painting featured at this exhibition feels whimsical in the aspect of how he was able to figure out a way to turn the most durable manmade material into a painting. Most paintings using lacquer or mother-of-pearl were about using the existing techniques to create a two-dimensional artwork rather than having it placed in a type of pictorial style. In other words, it was intended to transform its utilitarian value to impractical yet artistic value by applying the craft material to create artworks. However, Seong gave attention also to its potentials as a pigment which makes painting possible. Instead of unfolding a vessel and turning it into the two-dimensional design, he seemed to have created a totally different pictorial level by utilizing a material which was often used for filling up space, protecting supports,and heightening aesthetic accomplishments. The recent work of Seong is clearly about mixing colors, grinding them, and creating a new surface in order to achieve an image which is evocative of the deep yet soon-to-be-ending darkness during daybreak. It isworthwhile to give attention to his interpretation of the Korean natural lacquer as a material to create challenging yet profound depth instead of being a mere decorative pigment. A form is not always sufficiently descriptive of what is inside, however a pictorial form determines a whole new aspect of its contents. Art history has proven that to approach a certain issue creates a new style when it meets comparatively agreeable contents. Hopefully, Seong’s new foray can achieve a new style of painting satisfying contents and form at the same time.

3. A new material demands a new attitude towards its various approaches. The Korean natural lacquer’s usual way of designing space can be said 1) to create space and 2) to decorate the created space. On the otherhand, Seong is interested in positioning objects in the space created by manipulating Korean ink. Therefore the moment people choose the Korean natural lacquer as a pictorial material, they need to seek for reconciliation or for them to create and developtheir own approaches. Through this work, Seong seemed to have focused on a new way of experimentation towards a new material. To discover a unique and specific quality in each material and apply it to an appropriate point are the procedures involved in this work. To create a new specific approach is a difficult yet pioneering and innovative work..


Art Critic

평론모음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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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이진명 (미술비평, 미학, 동양학) "성태훈의 회화: 상실된 꿈과 인간화 과정" 성태훈 2022.03.22 14396
공지 변길현(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성태훈 - 시대의 풍경 앞에 “길을 묻는다“ 성태훈 2016.09.26 20905
26 이수, (미술평론) “수묵이 전달하는 충만한 일상- 성태훈 개인전” 성태훈 2018.09.24 18106
25 임대식(미술평론, 쌀롱 아터테인 대표) "애리(愛利)" 성태훈 2018.09.11 22300
24 이주희(미학, 미술평론) "오는 풍경" - 솔등재 성태훈 2017.12.09 17963
23 김지환(아트컴퍼니긱 대표) ▶ 성태훈 옻칠화 "중후하고 묘한 중년의 멋" 성태훈 2016.05.03 20002
22 박천남(미술평론가, 성남문화재단 전시기획본부장) ▶ "나는 닭" 성태훈 2016.04.27 20503
21 홍경한(미술평론,'아티클 편집장 ) ▶ "유토피아의 다른 언어" 성태훈 2016.04.04 21502
20 김상철(미술비평, 동덕여대교수) ▶ “닭은 아득한 이상의 공간에서 봉황으로 난다” [The chicken flies in a dim ideal space as the phoenix] 성태훈 2014.03.17 23655
» 김영민(가나아트센터 전시기획자) ▶ “꿈꾸는 닭, 닭이되 더 이상 닭이 아닌 닭” [Dreaming Rooster - Beyond Physical Limitations -] 성태훈 2014.01.08 60221
18 김노암(아트스페이스휴, 비영리전시공간협의회 대표) ▶ “닭은 날고 새벽은 오고” 성태훈 2014.01.08 22698
17 조성지(예술학박사, CSP111아트갤러리 디렉터) ▶ 풍자와 해학적 이미지로서 꿈을 향한 도전과 비상의 의지 성태훈 2014.01.08 21757
16 고충환(미술평론) ▶ 트라우마와 치유, 트라우마를 싸안고 날아오르기 [Trauma, Healing and Flying with Embracing Trauma (Seong Tae-hun’s Flying Roosters)] 성태훈 2014.01.08 24937
15 김현경(팔레드서울 큐레이터) ▶ 비현실적 삶의 풍경을 관념적 상상으로 표현한 풍자적이고 역설적인 발상 [Seong Tae-hun’s Flying Roosters] 성태훈 2014.01.08 22529
14 장동광(독립큐레이터, 미술비평) ▶ 매화꽃에 걸린 현대문명 성찰기(省察記)(제 15회 개인전) [Pondering Modern Culture through Plum Blossoms : Poignant Scent of Satire and Wit (The 15th Solo Exhibition)] 성태훈 2014.01.08 25636
13 박수철(동양철학) ▶ 성태훈을 보다.1(제 15회 개인전) [A Glimpse into Seong Tae-hun’s Artistic Journey (The 15th Solo Exhibition)] 성태훈 2014.01.08 20994
12 서영주(예술학, Curator) ▶ 梅 一 生 寒 不 賣 香 - 매화는. 일평생. 추위에. 향을. 팔지. 않는다.(제 13회 개인전) [Plum Blossoms Do Not Give Away Their Scent, Despite the Coldness of Life (The 13th Solo Exhibition)] 성태훈 2014.01.08 25248
11 이 섭(전시기획자, 미술비평) ▶ 왜 작가는 자신에게 길을 묻는 가? (제 12회 개인전) 성태훈 2014.01.08 21080
10 임대식(전시기획자, 미술비평) ▶ 폭력과 일상의 대 반전 (제 11회 개인전) [The Great Reversion between violence and daily lives (The 11th Solo Exhibition)] 성태훈 2014.01.08 2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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